[D+1] 식욕이 먼저다

2025. 11. 16. 22:05🚭금연 일기

사진 한 장 없으면 밋밋해서. 어제 저녁 산책길, "은행나무와 가로등", 글의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다행히도 금연 1일 차 도전에 성공했다.

 

아직 성공이라고 하긴 터무니없이 이른 감이 있지만, 하루의 성공도 성공은 성공이지. 이렇게 하루하루가 쌓여서 1년이 되고, 10년이 되고 그러는 것 아닙니까. 그 시작의 첫날을 무사히 잘 넘겼다. 보통 일요일 저녁 시간은 월요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침울할 때가 많은 데, 오늘 저녁은 기분이 괜찮다. 무엇보다 어제처럼 유혹에 무너져 참담한 기분을 느끼지 않아서 좋다. 나와의 약속을 지킨 것에 대한 안도와 만족이 월요병을 이겨낼 수 있게 해준다.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참을 수 있었다. 아니, 참는다는 인식조차 없었다. 어떤 금단증상이나 갈망 없이 '아, 그러고 보니 오늘 담배 생각이 안 났네?' 하는 저녁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런 날들만 며칠 지속된다면 금연 성공으로 향하는 안정적인 궤도에 쉽게 도달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담배의 유혹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익히 알고 있다. 온갖 회유와 협박, 꾀임을 동원해 이미 여러 차례 나를 무릎 꿇게 만들지 않았나. 오늘 하루는 어찌어찌 잘 지나갔지만 내일은 또 어떨지 모르니 일단, 방심은 금물이다.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되는 법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왜 금연이 쉬웠나 생각해 보면-

하루 종일 배가 너무 고팠다. 최근 간헐적 단식에 대한 관심으로 이런 저련 정보들을 찾아보고, 16시간 이상 단식을 시도하는 중이었다. 어제 점심 이후로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아침에 일어나 평소처럼 런닝을 했다. 일요일은 보통 10~15km 정도를 달리고 오는 데, 오늘은 공복 기간이 평소보다 길어서일까, 5km를 넘기자 온몸에 힘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근래에 겪어보지 못한 허기였다. 오기로 계속 달리다간 그대로 쓰러져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싶은 기분이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일단 달리기를 중단하고, 편의점을 찾아 음료와 에너지바로 급히 굶주린 배를 채웠다. 에너지바를 씹으며 생각했다.

'배 고프니까 담배는 생각도 안나는구만.'

 

그동안 강적이라고 믿어왔던 흡연욕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식욕은 생존의 문제다. 담배를 안 피운다고 해서 -금단증상이 아무리 심하고 담배 생각에 돌아버릴 것 같아도- 생명에 위협이 된다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배가 고픈 상태로 달리다 보니까, 이대로 계속 달리면 정말 탈진해서 쓰러질 것 같았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식욕과 굶주림 앞에서는 그 어떤 유혹도 무용지물임을 느꼈다. 가령 손 거스러미가 나서 따갑고 신경이 쓰이는데, 막상 손가락이 부러지면 일개 손거스러미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뭐 그런 게 아닐까. 더 강한 고통이 있으면 그보다 작은 고통은 느끼지 못하는 그런 메커니즘 말이다. 

 

이를 금연에 응용해 볼 수도 있겠다. 오늘처럼 굶주림의 고통으로 흡연에 대한 갈망을 잠재우거나, 고강도의 근력운동으로 온몸을 근육통에 시달리게 만들어 담배 생각을 잊게 만든다거나, 과도한 수면부족 상태를 만들어 자고 싶다는 생각 외에 다른 생각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다거나, 업무량을 늘려 엄청난 스트레스 상황으로 나를 몰아넣고... 이건 좀 그런가. 아무튼. 

 

절대 방심하지 말고, 내일 2일 차도 기운차게 금연을 이어가 보자. 

 

끝.

 

*

금연 1일 차. 

금단증상 없음.

갈망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