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1] 금연일기 소재가 부족하다

2025. 11. 26. 22:23🚭금연 일기

느낌이라는 게 있다. 이번 금연은 성공할 것 같은 느낌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공이란 당연히 평생 금연, 완전한 금연을 말하는 거 맞다. 건방진 생각일까. 뭐, 늘 내 느낌이 맞았던 건 아니니까. 5일 차가 지나고부터 예상대로 수월하게 금연을 이어가고 있다. 거의 하루 종일 의식하지 못할 정도다. 주변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러 가거나 돌아와서 옅은 담배 냄새를 풍길 때에야 내가 금연 중이라는 사실을 문득문득 깨닫고 있다. 그동안의 금연 시도와 실패를 통해서, 금연 근육이라도 생겨버린 건가 싶다. 금연에 대한 저항과 거부감에 내성이 쌓인 것일지도 모른다. 금연은 힘든 것이라는 인식이 무뎌진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게 무엇이든, 지금 금연을 지속하는 중에 분명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AI가 그려준 이미지, 제목을 붙여보자면 '금연에 성공한 남자'

 

금연 과정에 대한 치밀한 서사와 극적인 문학적 장치들로 금연 일기가 개인의 기록적 가치를 넘어 하나의 장르로서 기능할 수 있길 바랐는데, 계획과 다르게 고작 열흘만에 소재 고갈이다. '금단증상도, 그 어떤 어려움도 없이 담배를 한 번도 입에 물어본 적 없는 비흡연자 마냥 오늘 하루도 담배 생각 없이 지나갔어요.' 이런 식으로 매일 금연 일기를 채워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흡연에 대한 폐해와 금연에 대한 정보 전달로 가야 하나, 담배와 얽힌 썰들을 하나씩 풀어야 하나, 흡연자로 지내던 과거에 대한 반성과 참회의 회고 컨셉으로 가야 하나, 금연 일기의 방향성을 고민해야 할 줄은 몰랐다. 남은 90여 일에 대한 금연 기록을 어떻게 채워나갈까. 일단 분량에 대한 부담을 덜어야겠다. 누가 들여다보지도 않는 공간에서 짧게 쓰면 어때서. 이건 어차피 일기니까, 내 맘대로 써도 그만이지. 어떻게든 일정 분량을 채우겠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뭔가 쓸 거리가 있을 때는 길게 쓰고, 정 쓸 말이 없을 때는 한 두줄만 쓰고 뭐 그래도 되는 거 아닐까. 

 

벌써부터 금연일기가 부담스러워지는 기미가 보이지만, 오늘도 잘 해냈다.

 

끝.

 

 

*
금연 11일 차 성공.

금단증상 : 없음
갈망 : 없음